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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 독립운동에 몸바쳐 활동

-“이제야 자식들에 짐 덜었어요” -

2006-0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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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 독립운동에 몸바쳐 활동

젊은시절 독립운동에 몸바쳐 활동
“이제야 자식들에 짐 덜었어요”
이효정할머니 건국포장 ‘영예’

지난 8월15일 제61회 광복절을 맞아 최고령 독립운동가인 이효정(94세. 십정동) 씨가 건국포장을 받았다.
이효정 할머니는 국내에 생존하는 최고령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다.  
지난해부터 국가보훈처가 그동안 소외받은 좌파 독립운동가를 서훈대상에 포함시키면서 광복 61주년을 맞아 이 할머니는 지난날의 공적을 인정받았다.
이 할머니는 1913년 경북 안동의 독립운동가 이규락(증조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노동운동가인 친척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가담했다. 
“처음 내가 항일운동에 나섰을 땐 너 같이 얌전한 얘가 공부나 하지, 왜 그런 험한 일을 하냐면서 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말리기도 했어요.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작은 힘이지만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지요.”
이 할머니는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보적인 서적을 읽는 독서회를 결성하는 한편 광주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아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일본경찰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혀 경찰서에 끌려가기를 수차례, 모진 고문과 협박을  반복했다.
동덕여고보 졸업 이후에는 울산과 서울에서 교사로 근무했는데, 학생들에게 반일교육을 한다는 이유로 연이어 해임되기도 했다. 또 1935년에는 적색노조 사건으로 서대문 경찰서에서 2년 여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출감 이후 이 할머니는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으면서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고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1945년 해방을 맞게 된다. 하지만 해방이 되자 지난날의 좌익경력이 줄곧 할머니의 발목을 붙잡았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경찰서에 끌려 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때 팔을 다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오른쪽 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감옥에 수감돼 있던 남편이 실종되면서 할머니의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당시 남편의 실종은 월북으로 처리됐다. 이것은 할머니와 자식들에게 평생 굴레로 작용했다.
할머니는 계속된 감시로 제대로 된 직장마저 가질 수 없어  호떡, 과일 등 온갖 종류의 노점상을 전전했다. 또 큰 아들 박진수(69) 씨는 학창시절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몰매 맞는 게 일상적인 일이었으며, 마흔 다섯이 될 때까지 자신을 감시하는 형사가 따로 있었을 만큼 사생활은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자신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싶어 평생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자신의 안위를 바라지 않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할머니의 노고가 이제부터라도 재조명돼 이웃과 사회에게서 존경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장경선 기자>
sunny08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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