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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엄마 - 삼산 1동 송송자씨

-잘 자라준 자녀들 칭찬에 눈빛이 반짝 자식의 앞날 걱정하는 애절함에 도둑도 설득당해-

2009-0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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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엄마 - 삼산 1동 송송자씨

요즘 시대에 다섯 남매는 흔하지 않다. 자녀들의 크고, 작은 뒷바라지에 몸과 마음이 단 하루도 편안할 날 없이 살아온 송송자(삼산1동·57)씨, 그 부지런함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힘들게 살아온 시간과는 달리 그녀 얼굴은 언제나 밝은 표정이다.
막내가 3살 무렵에 남편과 사별 후,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남들이 마다하는 막노동에서부터 목욕탕 때밀이, 파출부, 식당, 일일노동 등 주어지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해왔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려니 기막히지 않은 사연이 없다. 생활수기를 낸 다면 ‘기구한 일만으로도 두 세권 분량이 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알릴만큼 자랑스럽지는 못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결혼을 하고 보니 집안은 빚 투성이에 남편은 지병까지 있어 생계는 점점 기울기만 했다. 다섯 남매가 태어나고, 지병을 견디지 못한 남편은 알콜 중독으로 이어져 회복을 포기한 상태까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송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35세가 되던 해에 돈을 벌기위해  아이들과 남편을 시골에 두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친척의 소개로 얻은 첫 일자리는 목욕탕 때밀이였다. 한 달 급여 15만원으로 생계와 병원비에 턱없이 부족했지만 한푼도 쓰지않고 모았다.
어느 날 목욕탕의 동료 종업원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그곳이 거처였던 송씨는 혼자 잠을 자다가 도둑을 만났다. 흉기로 위협하며 돈을 내 놓으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울면서 도둑에게 애원했다. “목숨만 살려 달라 아이가 다섯에 남편은 아프다. 내가 죽으면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간절한 절규에 “죽이지는 않겠다.”며 입과 눈을 막아 묶은 채 보일러실의 어둔 공간에 밀어 넣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죽었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찌됐을까 아찔하기만 하다고 회상한다. 이후 돈은 은행에 맡기는 철칙을 세웠다.
오남매 모두 장학생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그 중에도 둘째 딸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혼자의 힘으로 대학과정을 마쳤다. 둘째 딸이 대학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씌워 줬을 때 반듯하게 자라준 고마움과 당신의 서러움이 함께 겹쳐 주체 할 수 없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세 딸 모두 출가하여 사위들에게 효도도 받고 있다. 집도 장만하였고, 이젠 가정을 잘 이끌어갈 며느리만 맞이하면 당신의 인생은 행복의 완성이라며 벅찬 기대에 차 있다.
다섯 자녀 모두 사춘기에 나타나는 반항도 없었고, 형제간에 우애로 똘똘 뭉쳐 잘 자라 준 자녀들 칭찬에서 송씨의 표정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김혜숙기자 kimhs4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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