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워지는 겨울이면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춥기만 하다. 하지만 어려운 경기와 각박한 세태에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12월을 봄날로 만들고 있다.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을 위한 먹을거리와 집이 아닌 길거리로 내몰린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자장면을 전해주는 손길은 한 겨울 힘을 만들어준다. 뿐만이랴. 교육현장에서 현대판 페스탈로치를 행하는 교사와 하루도 빠짐없이 교통정리를 해주는 부평모범운전자회 기사 아저씨들, 지나는 행인을 위해 아름다운 노래와 아무 이유 없이 안아주는 프리허그는 또 얼마나 따뜻한가.
이들의 미담사례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살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며 2007년 12월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한다. 봉사란 엄청난 계획을 세우지 않고 내 작은 것을 하나만 나누어도 가능한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12월, 봉사를 해야만 행복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묵묵히 청소하니
아이들도 자연스레 따라하죠
후정초등학교 최영화 교장
부평 삼산동의 후정초교에는 매일 아침 교정을 누비는 페스탈로치가 있다. 1년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결 같이 아침 8시면 운동장에 나타나 손수 청소를 하는 최영화(60) 교장이 그 주인공. 페스탈로치 교장이 운동장에 나타나면 잠시 후 학생들이 하나 둘 따르며 청소를 시작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스스로 따라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산교육 현장이다. 지난 해 후정초교는 아름다운 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선생님들과 학부형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동참했다”고 말하지만 실제 최 교장의 노력을 빼면 할 이야기가 약해진다.
휴지를 줍던 후정초교 6학년 김재민 어린이는 “교장선생님이 청소 하시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저절로 따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 교장은 워낙 부지런한 성격으로 그동안 발령받아 다닌 학교마다 휴지 줍기와 꽃가꾸기를 병행했다. 근무하던 학교를 떠날 때면 몸담았던 학교를 청소하고 떠나곤 했다. 제자들에게 몸소 행함을 가르치고 싶었던 스승의 마음이다.
이 학교 교무부장은 “학교에 페스탈로치가 나타났다고 소문이 자자하다”고 전한다. 오늘도 후정초등학교의 교정에는 종이 한 장 보이지 않는다. 최 교장의 헌신은 아이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뛰어 놀 수 있는 깨끗한 학교, 오고 싶은 학교, 공부하고 싶은 학교로 만들어 가고 있다.
건널목서 오도가도 못한 여학생
안타까운 마음에 교통봉사 시작
부평 모범운전자회 최영식 회장
13년 전 추운 아침 등굣길에 한 여학생이 건널목 중앙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학생은 장애를 가지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걸음을 옮기지 못한 것. “나도 자식 키우며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그때부터 교통봉사를 시작한 최영식(48·부평모범운전자회 회장) 씨는 “운전자들은 교통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무조건 빨리만 가려고 하는 것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거든요. 보행자는 당연히 교통신호를 지켜야 하고요….” 그러다보니 신호를 어기거나 과속 차량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럴 때 최 회장의 신바람 호각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손끝은 빨라진다.
요즘은 부평 북부역과 원적사거리, 신북사거리 등을 오가며 봉사를 한다. 그가 눈동자 한 번만 돌리면 어느 차선에 수신호를 줘야 할지 1초도 안 걸려 자동으로 손이 올라간다. 교통경찰 두세 명의 몫을 거뜬히 해낸다고 자랑을 한다. 한 겨울엔 호루라기가 입술과 함께 얼어버려 피가 난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디 그뿐이랴, 길 가운데 서 있으면 달리는 차량이 일으키는 바람은 칼바람이 따로 없단다.
그는 아침 5시면 눈을 뜬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일기예보부터 챙긴다. 날씨에 따라 교통흐름은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누가 부탁하거나 사례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그의 호루라기가 더욱 힘을 내는 건 그를 필요로 하는 신호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 조금 나눴더니…
행복한 모습 보며 계속 봉사
공무원 박종순 씨의 무한봉사
“난 원래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가진 것 조금을 나누었더니 받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더군요.” 박종순(48·부평구청세무과) 씨는 조손가정, 부자가정의 아이들을 만나던 때를 이야기 한다.
그녀가 처음 유진이를 만난 건 2003년 부평구청 옆 신트리 공원이었다. 얼굴만 봐도 끼니를 거른 표정이 역력했던 아이. 조손가정 아이로 가출을 한 상태였다. 무작정 손을 잡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는 박 씨는 그 후부터 부자가정이나 조손가정 아이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가정이 불우한 아이들은 유난히 씻기를 싫어하고 집안에 있음을 불안해 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매주 토, 일요일이면 차에 태우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켜준다. 또한 실비를 털어 아이들 겨울 방한복과 장갑 목도리 등을 선물하고 나면 마음이 두둑해진다. 계산을 할 줄 모른다는 그녀가 찾아가는 신트리 공원엔 주말이면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린이들에게 최소한의 모정이라도 느끼게 하고 싶다는 그녀는 거리에서 만나는 모성(母性)이다. 그동안 가정을 찾아준 어린이, 학교로 보낸 어린이들이 줄잡아 50여명에 이른다. 주말이면 이들에게 보낼 치킨을 주문하고 귤 몇 천원어치를 사지만 그보다 더욱 값진 사랑이 있어 그녀의 봉사는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이혜선 기자
2hyesun@hanmail.net
매년 연말연시를 맞아 부평 문화의 거리에 가면 추위 속에 한줄기 따뜻함을 전하는 거리의 구세군의 종소리가 정겹고 경쾌하게 들린다. 무관심하게 지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은 돈이지만 수줍게 건네주고 가는 사람들. 이웃의 어려움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거리 천사들의 훈훈한 소식들은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위로가 된다.
구세군은 저소득지역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아동보육 사업과 저소득 가정의 가족복지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모의 가출이나, 이혼, 재혼, 가정해체로 인해 버려진 요보호아동을 수용하여, 보호·양육하고 있다.
세상은 나눌수록 배가되어 더 커진다는 말이 있다. 추위가 곧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는 사람들. 무료급식을 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것조차 괴로운 사람들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자선냄비에 1,000원 나눔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은 그 모습에서 그리고 그의 말이나 행동에서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따뜻함이 드러난다.
이동식 ‘자장면차’ 가는 곳마다
온정 듬뿍 담아 감동은 ‘곱빼기’
자장면으로 사랑 실천 ‘짜짜봉사단’
‘짜짜 봉사단’은 1996년 인천 부평시장 부근에서 일하는 상인과 회사원 등 10여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뭔가 보람 있는 봉사활동을 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해 봉사를 시작했다. 영업용으로 쓰던 화물차를 제공해 이동식 ‘자장면 차’를 만들고 자장면 면발 뽑는 장비와 버너, 조리도구를 갖추고서 회비로 면발과 양념 재료를 구입해 한 달에 한두 번씩 자장면을 만들고 있다.
회원들이 손수 만든 자장면은 어느 중국집 자장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고소하고 맛있는 자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회장 이향수(59·자영업) 씨는 “자장면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노인과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가슴이 훈훈해진다”며 처음엔 가까운 복지관이나 작은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몇 십 그릇 정도 만들던 것이 이제는 장봉도 섬까지 원정(?)을 나가 한 번에 400그릇씩 만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박장식(49) 회원은 “일을 마칠 때쯤이면 마음이 무척 편해집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삶 일부로 생각하고 꾸준히 가다 보면 20년, 30년까지 ‘짜짜 봉사단’의 활동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라며 아들 진철(18) 군이 아버지를 따라 6년간 봉사활동을 함께해 부평구에서 자원봉사 상을 받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인터넷 라이브 가수 변신한 주부
자선음악회 누비며 사랑의 노래
국내 1호 인터넷 가수 오준 씨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만 하던 전업주부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음반노래를 불러주는 인터넷 라이브 가수로 변신해 누리꾼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은 야후코리아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국내 제1호 인터넷 가수 오 준(48·산곡동) 씨는 “아이 셋 키우고 열심히 집안 살림만 돌보던 평범한 주부로서는 정말 새로운 체험이었어요. 그동안 노래를 하고 싶어 하던 제 숨겨진 끼가 물을 만난 고기처럼 피어난 거죠”라며 팬의 소개로 강석호 작곡가를 만나 수도음반사에서 ‘억새풀 사랑’과 ‘모닝커피 한잔’ 등을 주제곡으로 음반까지 냈다고 전했다.
그녀는 지역에서 열리는 자선음악회, 노인을 위한 잔치 행사에 무료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 20일 부평시장역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위한 거리 공연도 성황을 이뤘다. 새해에는 더 많은 거리 자선 음악회 준비를 계획하고 있다.
허스키한 음색에 가슴 깊은 곳에서 퍼 올리는 열정으로 여유롭게 노래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지난 96년부터 부평지역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노래도 부르면서 미용과 목욕봉사를 함께하고 있다.
대가 없이 낯선 행인과의 포옹
뭉클한 마음 가슴으로 전해요
부평역서 프리허그운동 안영길 씨

프리 허그 운동은 ‘FREE HUGS’라고 쓴 피켓을 들고 아무런 대가 없이 낯선 행인과 포옹하는 캠페인. ‘대가 없는 포옹’이라는 뜻이다. 부평역에서 최초 피켓을 들고 프리허그 운동을 벌인 안영길(48) 씨는 매월 둘째, 넷째 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저녁 9시까지 가슴 훈훈한 감동의 바이러스를 전파시키고 있다.
“마음을 나눠요. 안아드립니다”라는 피켓을 손수 만들어 두 손을 들고 반짝반짝 시선을 모아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처음에는 다들 어색한 듯 바라만 볼 뿐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포옹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추위에 떨며 서 있기를 30분. 드디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늘 행복하다. “냉소적이고 무반응을 보이던 사람들 틈에 젊은 여성 둘과 중년의 남자 분이 처음 안겼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라며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거리에서 조건 없이 안아줌으로써 사랑을 나누고 위로를 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백 마디 말보다 낯선 분들이지만 한번 안아주고 난 후 눈 맞출 때면 눈가에 눈물이 언뜻 보여 가슴이 뭉클. 그가 전하는 사랑은 촛불처럼 따뜻한 감동과 온기로 가득하다.
배천분 기자
chunbunb@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