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건강칼럼 - 돌+아이, 편견, 그리고 정신과

--

2011-01-25  <>

인쇄하기

건강칼럼 - 돌+아이, 편견, 그리고 정신과

개그맨 노홍철. 처음엔 “뭐 저런 사람이 있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겐 묘한 매력이 있다.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외모와 말투. 거침없는 말발은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고 은근히 빠져들게 하는 뭔가가 있다. 그의 공식적(?) 별명은 “돌+아이”

“돌+아이” 이런 심한 말이 그와 같은 매력 있는 연예인의 별명이라니...

돌+아이. 싸이코. 미친놈은 실제 현실에서는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공격할 때 쓰는 최고(?)의 욕설 중 하나이다. 그게 현실이다. 이 말은 정신과 질환 혹은 정신과 환자를 지칭하는 최고의 상징이다. 즉 정신과의 질병을 가진 사람은 이상하고, 무섭고, 같이 있을 수 없는 절대 함께 더불어 살 수 없어서 정신병원에나 쳐 넣어야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며 편견인 것이다. 정신과의사로서 아니 사람의 마음과 행동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는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미국사람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링컨 대통령이 살던 150년 전, 흑인에 대한 인식과 편견도 비슷했던 것 같다(꽤 먼 옛날인거 같지만 나의 할아버지가 1898년에 태어나셨으니,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사셨던 150년 전은 그렇게 먼 옛날은 아닌 거 같다.) 그 시절에 사람들은, 아니 백인들은 “흑인은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더 가까운 종족” 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자고 주장했던 링컨은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체제 전복 세력으로 몰려 총 맞아 죽었다. 그리고 불과 50년 전 쯤엔 미국에 마틴루터킹 이라는 목사님도 “흑인도 똑같은 인간” 이라고 말하다가 “사회의 악, 공공의 적” 으로 찍혀서 총 맞아 죽임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런 흑인이,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인 미국에서, 역사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 되었다. 편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흑인은 ”원숭이급의 수준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아마도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출세한 종족으로 볼 수 도 있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정신과적 질환에 대한 인식과 편견은 상상을 초월한다. “돌+아이. 싸이코. 미친놈” 이라는 욕의 파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그런 욕을 듣는다면... 상상만 해도 얼굴을 들고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수치심이 느껴진다. 그게 곧 정신과 질환의 낙인이 주는 파괴력인 것이다. 그 파괴력은 너무나 크고 무서워서 현재로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인다.

평소엔 야무진 30대중반의 주부인 H씨는 우울증이 너무 심해 불면증과 두통, 무기력감과 짜증에 시달리다가 어린 자녀의 양육을 내팽개치고, 심지어는 자신의 화를 못 이겨 아이를 심하게 때리는 등 신체학대와 방임을 서슴지 않고 술에 의지해 잠을 청할지언정, 약국과 병원을 전전하며 의존성 강한 수면제를 다량 처방 받아 복용할지언정, 불면증의 전문치료과인 정신과에서 절대 치료받지 않는다.

만성적인 직장의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과 불안증에 시달리는 40대 유능한 직장인 C씨는 스트레스성 위염에 시달려 치료해도 잘 낳지 않는 위장병 치료는 계속 할지언정, 정신과에서 우울증과 신경성 위장병에 대한 치료는 절대 받지 않는다.

왕따를 당해 학교가기를 두려워하고, 게임에만 빠져 청소년 우울증을 앓고 있는 L 군의 부모님은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우리 집안에서 자신의 자녀가 정신과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으며, 가문의 수치이고 당신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있을 수 없다” 고 하셔서 컴퓨터 중독에 빠지고 학교를 자퇴할지언정, 정신과에서 진료는 절대 못 받는다. 물론 학생 자신도 자신의 정신은 멀쩡하기 때문에 상담소에서 상담은 받을 수 있지만, 정신과에서 상담은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과 이들 가족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은 곧 가문의 수치이며,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을 인정하고 세상에 떠벌려서 도저히 얼굴을 들고 살 수 없는 것이며, 그 흔한 보험 하나 들 수 없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낙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생 중 한번은 골절, 디스크와 같은 정형외과적 질환을 앓을 수 있는 것처럼, 안타깝게도 정신적인 질환을 앓을 수 있다( 실제 2006년 전국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 3명중 한명은 평생 한번은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편견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 중 약 10명 중 한명만이 실제 치료를 받으며, 치료가 필요한 심한 우울증인 경우에도 병에 걸린 약 5년 후에 처음 치료를 받게 된다고 한다. 병을 키울 대로 키우고 묵힐대로 묵혀서 만성화 시킨 다음에 병원에 가는 것이다. 무슨 이런 병이 다 있단 말인가. “내가 만약 폐결핵이나 디스크 혹은 당뇨병에 걸렸는데 한 5년 쯤 병을 묵혔다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고 상상해본다. 참 끔직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끔찍한 일들이 정신과 질환에서는 일어난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런 편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질병을 만성화 시켜서 평생 진짜 환자(?) 로 살아가게 된다. 나의 진료실에서 만난 25살의 우울증 환자는 자살시도를 했다가, 목을 맬려고 묶었던 나무가 부러지면서 자살에 실패했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입원치료를 받았는데, 처음엔 입원시킨 어머니가 원망스러워하다가, 우울증이 호전 된 후 “내가 왜 그때 죽을 생각 뿐 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왜 직장도 연애도 포기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치료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치료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요” 라고 말했다.

만약 나중에 후회 할 것이 분명한데, 잘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인데, 우리에게 기쁨을 줄 한 인간인데, 편견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자살 해 죽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직하다. 마치 50 년 전에 흑인이기 때문에 간단한 치료 조차 받지 못해 죽은 억울한 죽음들 처럼... 그런데 이런 일들이 현실에서 무수히 일어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모든 사람이 정신과적 질환 없이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걸릴 수 있는 흔한 병이라면, 적어도 후회할 죽음을 막아야 하며,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아 평생 장애가 남아 살게 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의 편견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떳떳이 “저 독감에 걸려서 출근 못하겠습니다.” 라고 직장상사에게 말하는 것처럼, “저 우울증이 재발해서 출근 못하겠습니다.” 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회를 상상한다. 거침없이 표현하는 연예인 “돌+아이” 노홍철처럼. 그리고 그런 “돌+아이” 노홍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처럼...

공감신경정신과원장 이태주

목록

자료관리 담당자

  • 담당부서 : 홍보담당관
  • 담당팀 : 홍보팀
  • 전화 : 032-509-6390

만족도 평가

결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