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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황어장터를 아시나요?”

-독립운동 유적지와 후손을 찾아...-

2009-0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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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황어장터를 아시나요?”

올해로 90돌을 맞는 삼일절, 독립운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인천의 자랑이자 아픈 역사의 장이기도 한 ‘황어장터’와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만나 보았다.

황어장터, 부평과 인천지역 만세운동 선도
계양구 장기동 소재 ‘황어장터 3·1 만세운동 기념관’은 당시 인천지역에서 가장 큰 만세운동 사건으로 기록돼 2004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황어장터는 1910년대에 하루 1천여 명이 이용하는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시장이었다. 그러나 1919년 3월 24일 당시 장날을 이용, 강서지역 최대의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6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심혁성 지사(당시 32세)가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모인 군중들이 만세를 불렀다. 이를 본 일제는 즉각 진압작전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일제 경찰에 심 지사가 체포되고,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이은선 지사(당시 44세)가 일경의 칼에 맞아 순국했으며, 윤해영 지사는 중상을 입었다. 야간집회를 준비하던 100여명이 검거되고 32명이 경찰서로 압송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황어장터 만세운동은 부평과 인천지역 만세운동을 선도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념관 관계자는 “향후 기념관과 기념탑 주변의 부지를 늘려 지역민이 현충시설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도록 순차적인 시설확충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윤영의 씨
“매년 삼일절 기념행사에 참석합니다. 조부모님이 기억 속에 묻히지 않고 이름 석 자라도 등재 돼 감사해요.”
윤영의(74, 부개동)씨는 독립유공자 윤해영 지사의 손자다. 당시 황어장터에서 윤해영은 만세운동을 하던 중 심혁성이 체포되자 이은선 등과 중심이 되어 탈환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다 일경이 휘두른 칼에 의해 팔과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이후 김포 등지로 피신하며 병원신세를 지는 등 힘겨운 생활을 하다 1957년 작고했다. 윤해영 지사가 당한 부상은 가족들의 어려움과 고난으로 이어졌다
“일경들의 신변위협을 피해 치료하는 일도 힘들었고 부상 때문에 매우 심한 고생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또 그들의 수탈과 억압에 맘 놓고 생활하기도 힘든 세상이었지요. 정말 배만 안고파도 행복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윤 씨는 그런 어려움을 알기에 요즘처럼 풍족한 세상에서 군 입대마저 회피하려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했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했던 선열들의 희생과 그들이 정신을 특히 젊은이들이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이 몸 바쳐 싸운 역사가 있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을 후손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결연한 빛으로 말하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얼굴에 범치 못할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 
 
계양구 장기동 소재 황어장터 기념탑

김지숙 기자 jisuk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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