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지기 '영아다방'. 가게 이름을 따 사거리가 생겼을 정도로 영아다방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다음 사거리의 공통점은? 논현동 차병원사거리, 안세병원사거리, 강남성모병원사거리, 강남 뱅뱅사거리, 청천동 영아다방사거리, 남동구 동양장사거리.
바로 특정 업소의 명칭을 따서 사거리 이름이 지어졌다는 점이다. 요즘에야 이런 경우가 드물지만 큰 건물이 많지 않았던 옛날에는 허허벌판에 떡하니 들어선 건물이나 업소가 사거리에서 가장 찾기 쉽고 알아보기 쉬웠으니 정식 사거리 명칭으로 등록되어 시민들의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취재차 방문한 영아다방은 부평에서 40년가량 영업해온 다방으로, 최신식 커피숍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널찍하게 놓인 테이블과 소파, 그리고 카운터.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왠지 정겹고 익숙하다. 영아다방은 노년의 사장내외가 손수 차를 내오며 서빙을 하며 유지하고 있다. 직원을 두지 않으시냐고 묻자, 다방은 사양사업이라 젊은 여자들이 더 이상 일하려 하지 않는단다. 예전에야 아가씨들이 서빙도 하고 그랬지만 단란주점과 노래방이 늘어나면서 아가씨들이 그러한 업종으로 흡수됐다고.
지금이 여섯 번째 주인이라는 사장 내외는 이전 주인으로부터 1995년부터 영아다방을 물려받아 영업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주변이 온통 논밭이었고 후에 공장들이 들어섬에 따라 자연히 다방 이용객이 늘었다고 한다. 인근에 동양철강이 들어서 3교대 근무를 하고, 은반지 공장 등이 들어섰을 때는 새벽 출퇴근자들이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고 또 커피가 귀했던 터라 종종 커피 배달을 시켰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가지만 가수 이선희가 라이브 연주도 했다고 하니 영아다방은 청천동 주민들의 쉼터로 참으로 오랫동안 영업해왔다.
사장 내외는 과거를 회상하며 얘기했다. 1995년만 해도 공중전화 수입만 20만원은 됐었다고. 하지만 IMF가 터지고 휴대폰이 보급되면서 영아다방을 찾는 이들은 급속도로 줄었다고 한다. 공중전화기를 유지하려면 전화국에 월 1만원씩 지급해야 하는데 공중전화 이용 빈도가 줄어 월 5,000원 넘기기도 힘들다고 한다. 커피도 흔해져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커피 한 잔 하고 나오거나 혹은 사무실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기 때문에 다방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한다. 그나마 예전에는 맞선을 보거나 계약을 위해 다방을 찾거나 혹은 금전관계로 다투는 사람들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커피숍에 밀려 그마저도 안 되고 있다. 사장님은 자신들도 나이가 많아 얼마나 더 영아다방을 유지할지 모르겠다며, 수익이 안 나니 앞으로 영아다방을 이어나가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걱정한다.
가게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어렵게 허락받았지만 사장 내외는 한사코 사진 찍는 걸 거절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이름도 싣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시대의 흐름 속에 서서히 사라져가는 다방들이 궁여지책으로 술을 팔고, 티켓을 팔고 종업원에게 퇴폐영업을 시키는 등 안 좋은 행위를 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방이 안 좋은 이미지로 굳어졌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다방집 자식이라며 많이 놀림 받았다고 한다.
청천동의 상징과도 같은 영아다방. 이제는 찾는 이 뜸한 허름한 다방이지만 그래도 간간히 찾아와주는 옛 손님들이 반가워 쉬이 일손을 놓치 못한다는 노부부의 표정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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