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봉산 둘레길
집 근처에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이 있는 것도 복이다. 인천 백운역에서 서쪽으로 산봉우리들이 연이어져 있는데 함봉산, 호봉산, 호명산, 철마산(천마산), 원적산... 등 봉우리마다 이름도 다양하다. 이 산줄기는 쭉 계양산까지 이어져 있는데 다 걸으려면 아마 5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이 산줄기는 등산로로 모두 이어져 있고 산줄기 좌우로 둘레길도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어 개인의 걷는 능력에 따라 마음대로 선택하여 걸을 수 있어 좋다. 나는 집이 이 근처라 산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컨디션에 따라 두 시간 코스, 혹은 세 시간 코스를 선택하여 일주일에 평균 두 번씩은 걷는다.
이 함봉산은 산 정상의 능선을 따라 예전부터 등산로가 있었는데 3, 4년 전인가 산 좌우 7부 능선 정도에 멋들어진 둘레길이 새로 조성되어 사람들이 이제는 정상의 등산로로 다니지 않고 오히려 이 둘레길을 더 애용한다.
그런데 이 둘레길을 조성한 분이 8순의 노인이어서 등산객들을 놀라게 한다. 몇 달간 곡괭이, 삽, 톱 괭이를 메고 산에 올라 묵묵히 혼자 길을 만드셨다는데 구청으로 신고도 여러 번 들어가 조사도 나오고 했단다. 자연훼손이니, 수상한 사람이라니....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생긴 둘레길인데 길이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지금도 이 둘레길을 걷노라면 이따금 괭이와 톱을 들고 길을 보수하는 이 어르신을 만날 수 있는데 우리부부는 만날 때 마다 꼭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음료수나 과일을 드리곤 한다. 당신이 직접 세우셨는지, 구청에서 세워드렸는지 둘레길 중간쯤에는 영감님 사진을 넣은 자그마한 돌 비석이 세워져있고 둘레길을 만드셨다고 적혀있다.
영감님이 만든 이 함봉산 둘레길 중간쯤에 연리지(連理枝)가 있는데 인터넷에도 소개되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중국 당대(唐代)의 대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쓴 대서사시 장한가(長恨歌)로부터 연유하는 연리지는 아시는 바와 같이 따로 자란 두 나무가 가지로 연결된 것을 말한다.
당 태종이 양귀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살아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죽어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기를 천지신명께 빈다.”는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이야기의 본 고장인 중국 서안(西安/洛陽)의 화청지(華淸池)에도 가 보았는데 일부러 파 옮겼는지 연리지를 많이 볼 수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 동네 함봉산의 연리지만 못하였다.
함봉산의 연리지는 3~4m 떨어져 있는 두 신갈나무가 팔뚝보다 굵은 가지로 연결되어 있는데 길이도 3m는 족히 되겠다.
부평구청에서는 이 연리지 둘레를 판자 울타리로 둘러막고 해설판을 세워 관리하고 있는데 그 해설판 내용이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달라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시정되지 않고 있다.
해설판에는 '백낙천이 쓴 연리지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써 있는데 시 제목이 '연리지'가 아니고 '장한가(長恨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2~300m쯤 더 가면 조금 작은 규모의 연리지가 또 하나 있는데 어떤 이가“행복한 나무”라 종이에 쓰고 코팅하여 줄을 꿰어 걸어 놓았는데 조잡하지만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오게 한다.
또, 함봉산의 함자는 컴퓨터 옥편에는 나오지 않는 조금 생소한 한자로 갈거(去) 옆에 범호(虎)를 붙여 쓴 글자이다.호랑이 크게 울 "함”자이다.
이 글자를 보고 사람들은‘호’로 잘못 읽어 호봉산이라고 한 모양인데 구청에서 세운 등산로 중간의 이정표도‘호명산, 호봉산, 함봉산’이 짬뽕으로 쓰여있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함봉산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