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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되찾기와 문화거리 만들기

  • 작성자
    관리자(부평의제21실천협의회)
    작성일
    2006년 5월 30일(화)
  • 조회수
    536









길 되찾기와 문화거리 만들기 
 

                               정 석(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설계연구센타 책임연구원)


1. 두 종류의 길

『책같은 도시, 도시같은 책』을 쓴 황기원 교수는 길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통로(通路)'라 불리는 길로, 고속도로처럼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를 가장 빨리 이동하게 하는 기능이 중시되는 경우다. 파이프나 면도날에 비유할 수 있는 이런 길은 사람보다는 자동차를 위한 '찻길(車道)'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가로(街路)'나 '거리'로 불리는 길인데, 시장길처럼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의 신속한 이동보다는 과정에서의 머뭇거림, 기웃거림 등이 더 중시되는 경우다. 목걸이나 산적에 비유할 수 있는 이런 길은 자동차보다는 사람을 위한 '사람길(人道)'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거리나 예술의 거리는 '통로'라 불리는 찻길에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 과정보다는 시작과 끝만이 중시되는 파이프나 면도날과 같은 길에서는 문화건 예술이건 할 것 없이 모두 신속한 이동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장애물 또는 걸림돌 정도로나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거리, 예술의 거리는 '가로'나 '거리'로 불려지는 길, 신속한 이동보다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삶짓이 중시되는 목걸이나 산적과 같은 길, 다시 말해 찻길이 아닌 사람길에서나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문화거리 만들기의 모색은 문화거리 형성의 토양이라 할 수 있는 사람길을 살펴보고 되짚어봄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가로와 거리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곳이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만큼 튼실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빼앗긴 사람길

안타깝게도 우리 도시에서 사람길이라 할 만한 곳은 매우 드물다. 문화거리의 토양 자체가 매우 척박한 것이다. 사람길이란 모름지기 사람이 걸을만한 곳이어야 한다. 안심하고, 편안히, 그리고 즐겁게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짐 든 사람들도 편안히 다가와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곳에서 문화건 예술이건 싹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길이나 거리를 찾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길의 대부분이 찻길인데다가 사람길마저 갈수록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빼앗긴 사람길의 실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첫째, 넓은 길의 경우 길 가운데 대부분의 공간은 찻길이고, 길 가장자리 구석에 보도(측도: sidewalk)라는 이름의 사람길을 옹색하게 두고 있다. '도로-차도=보도'라는 공식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러한 식의 길 만들기로 인해, 찻길 넓히기를 위해서라면 보도는 언제든지 좁혀질 수 있고, 차의 주행을 방해하는 일체의 시설이나 물건이 찻길에는 절대로 세워질 수 없는 반면 보도 상에는 지하도, 육교, 가로등, 환기구, 가판대, 공사자재, 상품, 간판 할 것 없이 보행을 방해하는 수많은 시설과 물건이 세워지고 놓여져도 괜찮고, 심지어는 자동차가 버젓이 보도 위를 달리거나 주차를 해도 너그럽게 보아 넘기고 있다. 

비좁고, 장애물로 가득 찼을 뿐만 아니라, 평탄치 못해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지경인 곳도 많다. 건물을 지을 때 보도에 접한 대지의 바닥을 들어올려 보도를 경사지게 만들고, 대지로 드나드는 차량의 출입을 위해 만든 시설(나팔구)로 보도는 늘 잘리고 가로막힌다. 게다가 움푹 꺼지거나 튀어나오고, 틈새가 벌어지거나 미끄러운 바닥포장으로 인해 보도 위를 걷는 게 살얼음판 걷듯 힘겹기만 하다. 건강한 사람도 장애물 경기하듯 걸어야 하고, 휠체어는 물론 유모차나 자전거가 다닐 수조차 없는 사람길에서 과연 문화가 싹틀 수 있겠는가? 

둘째, 좁은 길도 마찬가지다. 한길 뒷켠의 이면도로나 집 앞 골목길, 단지내 도로, 학교 앞 통학로 등은 자동차의 통과기능보다는 접근기능이 강조되고, 주민 생활공간과 어린이 놀이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함께 하는 이른바 '생활도로'라 할 수 있다. 길의 기능과 마당의 기능이 함께 담겨야 할 생활도로는 당연히 찾길 보다는 사람길다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의 모습이다. 

막힌 큰길을 피해 지름길 삼아 드나드는 차량들로 늘 번잡하고, 주차차량에 대부분의 공간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과속과 난폭운전으로 더 이상 아이들이 나가 놀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마을길마저 자동차에 빼앗기고 만 것이다. 이 곳에서도 문화는 싹틀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찻길 건너기가 쉽지 않은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사람을 위한 길과 공간이 곳곳에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편안한 길 건너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곳은 외딴섬일 뿐이다. 접근이 어렵고,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사람길로서의 역할은 물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즐겨 찾는 문화거리가 되기도 어렵다. 

편안한 길 건너기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횡단보도가 드물기 때문이다. 국보1호인 남대문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다. 찻길로 둘러싸인 남대문은 마치 바다 저편의 외딴섬처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시청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가 없기 때문에 눈에 빤히 보이는 덕수궁이나 소공동에 가기 위해선 지하도를 오르내려야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하철이 개통되면 원래 있던 네거리 횡단보도를 지워버린다. 지하철역의 지하도를 통해 찻길을 건널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통행에 지장을 주는 횡단보도는 없애야 한다는 논리의 결과다. 하루아침에 횡단보도를 빼앗긴 사람들은 땅밑으로 수백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길을 건너거나, 아예 목숨을 내걸고 찻길을 건넌다. 이른바 무단횡단을 하는 것이다. 

차들은 편안히 길을 건너고,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길을 건널 수 있다는 사실은 인권(人權)보다는 차권(車權)을 존중하고, 주행권(走行權)의 보장을 위해 보행권(步行權)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서글픈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횡단보도 대신에 계단을 통한 찻길 건너기를 강요하는 현실은 비단 인권과 보행권의 침해일 뿐만 아니라, 계단 이용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노약자와 장애인, 바퀴 이용자들의 접근권과 이동권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과 다름없는 잘못된 일이다. 


3. 길 되찾기와 문화거리 만들기

문화가 깃들이어 있고 예술이 살아 숨쉬며, 정감과 정취가 넘치는 문화거리를 만드는 일은 사람길의 되찾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먼저 빼앗긴 길부터 되찾고, 되찾은 길을 사람이 걸을 수 있게, 걸을만하게, 그리고 걷고싶은 생각이 들만큼 되살린 뒤에야 비로소 그 곳에 문화건 예술이건 담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길 되찾기는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생각을 바꾸는 일부터 해야 한다. 차량의 소통을 위해서라면 보행자는 불편과 곤란을 겪어도 상관없다는 생각, 찻길을 만들고 여유가 있을 때나 사람길을 만든다는 생각을 바꾸어 차보다 사람을, 운전자보다 보행자를, 찻길보다 사람길을 먼저 생각하도록 법과, 제도와 정책과 관행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길을 바꾸어야 한다. 모든 보도는 말 그대로 사람이 다니는 길, 즉 인도(人道)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폭과 평탄성을 확보하게 하고, 어지럽게 널려진 시설물과 물건들을 정비하며, 자동차의 침탈을 방지할 수 있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또한 노약자와 장애인, 그리고 바퀴 이용자들이 편안히 다닐 수 있도록 턱을 낮추고, 계단과 단차를 없애는 일도 함께 추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모호한 생활도로의 경우에도 찻길과 사람길을 구분하고, 불필요한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며, 자동차의 과속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찻길을 좁히고, 꺾는 등의 '자동차 길들이기 장치(traffic calming measures)'를 곳곳에 해두어야 한다. 

셋째는, 편안한 찻길 건너기를 보장할 수 있도록 횡단시설을 개선해야 한다. 지하도나 육교만 있고 횡단보도는 없는 곳을 비롯해 횡단보도가 필요한 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하여, 약자를 포함한 모든 보행자들이 편안히 길을 건널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 밖에도 바꾸어야 할 것은 많다. 특히, 거리문화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는 길가 건축물도 거리와 보행자에게 좀 더 친근해지도록 변해야 한다. 건물의 1층 바닥을 들어올려 보도를 경사지게 하거나, 건물 입구에 쓸데없이 계단을 만들어 약자들의 접근을 가로막는 일을 그만두고, 그 대신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과 쉼터를 제공하고 흥미와 관심을 줄 수 있도록 설계에 세심하고 자상한 배려가 깃들여야 할 것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자라고 가꾸어지는 것이다. 문화거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수막을 걸고, 청사초롱을 밝히며, 제아무리 신명나는 판을 벌인다고 해서 문화거리가 갑자기 만들어질 수는 없다. 문화거리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은 바로 거리이고, 길이다. 사람들이 즐겨 걸을 수 있는 길과 거리에서만 문화가 싹트고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문화 만들기보다 길 되찾기가 그래서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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