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베꾸마당 거리에서 찾는다
잃어버린 베꾸마당 거리에서 찾는다 |
바다 건너 거리를 본다 1-파리를 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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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파리 인근 클리시-수-부아에서 경찰검색을 피하던 이슬람계 두 소년이 변전소 담을 넘다 감전사하면서 시작된 프랑스 소요사태. 같은 달 28일 파리 외무부 앞에선 이들과 불법체류자들의 침묵시위가 있었다. 이날 밤 파리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유람선관광객들에게 한 무리의 청년들이 다리 위에서 침을 뱉는다. 씁쓸한 풍경. 하지만 27일 이전에 일주일 동안 돌아본 파리는 평온했다. 이탈리아 로마와 함께 전 세계 도시 중 관광객이 가장 많다는 파리는 다소 지겨울 정도로 일상적이었다.
길거리 예술가의 ‘천국’ 은 옛말
△ 가난한 예술가들의 천국은 옛 말이 된 황량한 몽마르트르 언덕 = 물랭루즈가 있는 파리의 전통적인 홍등가 지역인 클리시(Clichy) 대로와 로슈슈아르(Rochechouar) 대로 중간에 있는 피갈 광장. 광장을 중심으로 폭 8차로의 도로가 이어진다. 파리 시내에 있건만 로슈슈아르 대로는 도로 중간이 보도와 자전거 도로이고, 그 양쪽이 각각 2차로 차로로 만들어져 있다. 마치 차가 사람과 자전거에 밀려난 거리처럼 느껴진다.
차로는 느림보 운행을 하는 차들로 북새통이지만 도로 중간 가로공원은 한가롭기만 하다. 피갈 광장에서 북쪽으로 10여 분을 올라가면 유명한 몽마르트르 언덕이 나온다. 언덕 중심에 샤크레 쾨르(성심) 성당이 눈앞을 장식한다. 성당 앞을 지나자 관광객에게 색동줄로 팔찌를 만들어 돈을 받으려는 한 무리의 흑인청년들과 성당 앞에서 소매치기를 하려다 들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아랍계 청년이 한 눈에 들어온다. 10%에 육박하는 프랑스 실업률이 안겨다주는 단상처럼 느껴진다.
샤크레 쾨르 성당을 오른쪽으로 끼고 좌측으로 돌면 나오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집합소라는 테르트르 광장. 몽마르트르에 대한 한국인의 환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가난한 예술인들이 초상화를 그려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그나마 좁다란 광장 한 가운데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 화가들은 광장 테두리에 겨우 걸쳐져 있다.
카페 테라스(우리나라에선 노천카페라고 하지만 실제 프랑스에선 이 말이 없다)에서 한가로이 에스프레소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 이들의 풍경과 비교하면 거리의 화가들이 내뿜는 풍경은 서울 대학로와 비교해도 초라할 뿐이다. 더욱이 화가 피카소, 시인 막스 자콥, 영화감독 프랑수아 튀르포 등 가난한 예술인들의 주거지였던 몽마르트르 언덕은 이젠 흑인과 아랍인 등 가난한 소수인종들이 밀집된 주택지로 바뀐 지 오래였다.
거리 곳곳엔 소매치기와 거지들
△ 파리 거리에는 거리예술이 없다 = 파리 거리 어디에도 ‘거리 예술’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예술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파리건만 이틀 내내 돌아본 파리의 주말 거리풍경 어디에도 국내와 같은 이벤트 형 거리예술축제는 찾을 수 없다.
보행자 전용(우선)거리를 조성해 주말이면 거리축제를 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우리네 모습. 파리의 거리예술을 말하는 이들은 과연 어느 나라 파리를 말하는 것일까.
대신 퐁피두 센터(현대미술관) 앞 광장, ‘파리의 배’로 불리는 레알(Les Halles) 지역과 인근 분수로 유명한 이노상 광장, 마레 지역,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 등 거리와 광장 곳곳에는 거지들로 넘쳐난다.
몽골전통의상을 입고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몽골인, 국내 공연축제 때도 종종 볼 수 있는 안데스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중남미인들, 루마니아 집시들, 자신의 몸을 온통 페인트로 칠해 광대를 연상시키는 이들… 주로 외국 이주민들이 중심이 돼 이들 모두 간단한 퍼포먼스로 광장과 거리를 메운다. 이들은 대부분의 파리지엔들로부터 가난한 예술인이라기보다 거지로 불린다고 한다. 대신 시청에서 공식 등록증을 받아 관리돼 아무나 거지가 될 순 없다.‘거지’조차 직업으로 인정되는 프랑스식의 약간의 관용이 있을 뿐.
광장·카페엔 조용한 분위기
하지만 예술행위가 없다고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만큼 일조량이 많지 않은 파리. 일요일 오전 구름이 끼었을 때 한산하던 거리와 광장이 오후 들어 햇볕이 나자 카페와 광장,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진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 섬과 생 루이 섬을 잇는, 주말이면 보행자 전용 도로가 되는 생 루이 다리 위는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로 묘기를 부리는 젊은이들과 관람객들로 채워진다.
이노상 광장 앞에서 묘기연습을 하는 10대 소녀들. 거지와 달리 이들 앞엔 돈을 받는 통이 없다. 일방통행이 발달된 유럽에서 거리와 광장은 비록 ‘거리예술’은 없을 지라도 햇빛을 쬐는 이들, 책을 읽는 이들, 자신의 재주를 과시하는 청소년과 젊은이들 등. 거리와 광장은 자연스레 문화를 게워내고 있었다.
△ 독재의 그늘이 완성한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 = 파리는 도심 외곽을 끼고 도는 환상도로를 중심으로 둘레 36km에 200만 명이 밀집해 사는 비교적 작은 도시다. 또한 파리는 역설의 도시다. 도시 전체가 간접조명을 써 야간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곤 하지만 파리의 밤거리는 한산하다.
이런 대대적인 도시 리모델링은 다소 폭력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독재정치체제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도시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독재의 그늘은 지금의 파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시켰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파리의 위생·공공설비·운송시설의 근대화는 이때 골간이 완성되었고, 불로뉴와 뱅센의 우아한 공원들을 조성했으며, 센강의 주 섬이자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파리에서 가장 유서 깊은 시테 섬(Ile de la Cite)을 행정과 종교의 중심지로 바꾸었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와 1960년대 말, 대형화재가 있기 전까지 파리의 중앙시장역할을 한 레알(Les Halles)을 건설하고, 많은 공원·광장·교회·극장·공공건물, 그리고 주거지역들은 이 시기에 완성되었으니.
환경도시로 변모 이미 시작
파리 역사상 드물게 사회당 출신으로 당선된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장이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도로를 확대하고, 대신 T3로 불리는 경전철을 내년부터 도입하기 시작해 자동차 중심 교통순환에서 대중교통중심으로 보행환경과 환경을 중심으로 두는 도시로 변모시키는 일대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 축에선 또 다른 그늘이 파리의 변화를 예감케 한다. 프랑스 소요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 10월 28일, 알렉산더 다리 위에서 유람선을 탄 이들에게 침을 뱉는 아랍계 10대 청소년들, 유럽 최대의 벼룩시장인 생 투앙(Saint-Ouen)에서 볼 수 있던 흑인과 아랍계로 이뤄진 10대 초반의 소매치기 소년들, 이전 시민 누구에게나 개방되었던 파리시청이나 소르본 대학본관(현 파리 4대학 본관) 등 공공기관들이 9·11 테러 이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는 감시카메라의 천국이 된 모습.
독재의 그늘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는 ‘우파와 극우파 정치의 그늘’이 만들어낼 또 다른 모습으로 파리의 하늘을 불안감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사진/유은상 기자
※이 기획취재는 문화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전국 지역신문 종합평가 결과 경남도민일보가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됨에 따라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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