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이농인구는 사라지고, 2004년 국내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1.16명을 기록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도시가 팽창될 이유가 그만큼 사라졌지만 도내 대부분의 도시들은 새로운 지구개발을 여전히 도시계획의 기초로 삼고 있다. 이미 인구가 줄거나 정체상태를 보이는 데도, 도심은 팽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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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베르시 빌라주의 일요일은 여유롭다(왼쪽). 스트라스부르그의 중심 클레베르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의 모습 또한 여유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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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지구개발은 구도심의 급격한 슬럼화를 가져온다. 재래시장상권의 몰락, 뒤이어 그 지역의 슬럼화를 가져오고, 사후약방문 같은 각종 거리조성은 실상 도내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곧 다가올 본격적인 구 도심 슬럼화에 대한 징후로 읽힌다. 구 도심에 대한 거리조성이 구 도심재생이라는 도시계획으로 확장되어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건축적 다양성에 일관성 결합
자치단체는 거리조성과 상권활성화라는 협소한 시각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태도다. 도시 전체에 가져올 영향은 고려하지 않는다. 도심 한복판에 대형유통자본을 별다른 조건 없이 허가해 재래시장상권의 몰락을 자초하고, 그 지역 슬럼화를 재촉해온 각 자치단체들은 앞으로 닥칠 도시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사실상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파리 베르시 지구와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그는 철저한 도시계획으로 구 도심을 기능적으로 어떻게 바꿔나가는 지를 잘 보여준다. 경제규모 세계 11위라는 한국의 허상과 프랑스의 도시계획은 대조를 이룬다.
차 없는 도심, 보행자 권리 보장
△옛 것은 살리고, 계획은 철저하게-파리 베르시 빌라주 = 구름이 걷힌 지난 10월 23일 오후 1시, 파리지하철 중 무인운행 등 최신식을 자랑하는 14호선을 타고 내린 생테밀리옹 역.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자 좌측으로는 베르시 공원과 우측으로는 상업거리인 베르시 빌라주(Bercy Village. 혹은 Cour St-Emilion)가 나온다. 의자에 앉아 있는 갓 20살이 지난 한 여성에게 말을 걸자 “엄마랑, 할머니랑 점심을 먹으러 나왔는데, 햇볕이 좋아 잠시 햇볕을 쬐고 있다”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P > 카페와 각종 상점이 즐비한 이 거리 양쪽 카페테라스에는 식사와 포도주,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는 이들로 붐빈다. 카페테라스에서 부인과 주말을 즐기고 있는 오트 디디에(50·엔지니어)씨는 “베르시에서 살고 있는데, 2000년 이곳이 이렇게 바뀌기 전에는 도시 속 시골마을처럼 되어 있어 포도주와 술과 관계된 이들만 모여들었다”고 리모델링 이전을 얘기한다. “지금은 한달에 한번씩 이곳을 찾아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신다”고 말한다. 이곳은 파리지엔들에게 새롭게 각종 받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예전 파리로 들어오는 포도주와 물류 창고로 활용되던 이곳은 1990년대 후반 리모델링에 들어가 취미·식당·문화·휴식·상업의 복합기능을 가진 앵글로색슨계 도시 위락센터(urban entertainment center) 개념을 도입해 새롭게 꾸며졌다.
안에서는 구 베르시 지역의 포도주 저장창고들 형태를 그대로 살리고, 건물 앞까지 들어온 철도의 철로를 유지해 과거 이 지역만의 특성과 고유성을 잘 보여준다. 창고형태의 3층 건물은 39채가 채워져 대지 전체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각 상점 간판들은 작고, 오히려 베르시 빌라주라는 문양이 있는 작은 깃발이 눈에 띄어 거리와 상점의 통일성을 주었다.
이곳은 동떨어진 거리조성만이 아닌 파리 남동부 지역 재개발과 맞물려 조성되었다. 프랑스 내에서도 성공적인 도시 재개발로 손꼽히는 이 베르시 지구(20구 중 제12구)는 1977년 파리시의 도시플랜 SDAU(le Schema Directeur d’Amenagement Urbain ) 발표로 지역개발의 희망을 찾는다. 이 파리 도시플랜은 파리 서부에 비해 방치상태로 있던 파리남동부를 파리 전체지역과 균형을 맞추는 주요지역으로 주목한 것이 특징.
1980년대 이후 미테랑 대통령의 대규모 프로젝트들 중 하나인 프랑스 재정경제부 청사건물(le Ministere des Finances)과 운동경기장과 공연장 두 기능을 다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인 팔레 옴니스포오(le Palais Omnisports)가 들어서면서 도시계획이 구체화된다.
이후 국제상업센터인 베르시 엑스포, 구 화물창고로 예전 좁은 길들의 흔적과 툴러리 정원을 살린 대규모 베르시 공원이 들어서고, 파리 도시주거계획 최초로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인 공원 등을 연결하는 ‘열린 주거 공간’을 도입한 1200가구의 베르시 주거지구(ZAC de Bercy-Front de Parc)를 개발, 마지막으로 상업지구인 베르시 빌라주의 개발을 완성한다. 30여 년에 가깝게 30여 명의 건축가들이 건축적 다양성을 통합하면서도 도시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조정에 참여해 만든 결과물이다.
도시계획 단계부터 통합상 제시
△도심에서 차를 몰아내는 유럽의 심장, 스트라스부르그 =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방의 주도인 스트라스부르그는 곧 개통할 고속철도 TGV를 통해 유럽으로 뻗어 나가려는 야심찬 프로젝트에 들떠 있다. 국내에선 경전철 트람(tram)의 도시로 유명한 스트라스부르그는 사실 유럽 내에서는 유럽의 수도로 알려져 있다. 브뤼셀이 각료회의와 임시총회가 열리는 임시수도라면 스트라스부르그는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유럽의회가 열리고, EU 상임위원회가 있는 유럽제국 EU의 심장부다.
스트라스부르그는 도시가 시작된 역사적 스트라스부르그 지역 혹은 상트르 드 빌(도심중앙, centre de ville)에 ‘차 없는 도심’ 제도를 시행해 보행자위주의 도심을 조성하고 있다. 보행자전용공간은 보통 하나에서 몇 개의 단위도로수준에서 지정·관리되는 것과는 달리 이 제도는 도심중앙 전체에 차량진입제한 조치를 취한다. 스트라스부르그 기차역 앞 도시안내센터의 한 여직원은 이런 조치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도심환경문제를 위한 필요에 의해 할 뿐”이라고.
4개 노선으로 나뉜 트람은 도시전체를 관통하면서 옴므 드 페르(Homme de Fer) 역에서 만난다. 도심에 전혀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신 도심 중앙 전체가 일방통행 차로로 되어 있고, 도심 곳곳에 보행자 전용거리와 광장이 있다. 그리고 주차요금도 상당히 비싸다.
도심중앙 외곽에 6개의 대형주차장을 만들고, 이 곳에서 곧바로 트람으로 바꿔 탈 수 있는 환승 체계를 만들어놓는다. 하루종일 이곳에 주차하고 트람으로 환승하는 요금이 2.8유로로 도심 내 2시간 주차요금보다 싸다. 이런 도로와 주차요금체계로 도심 내에서 되도록 차가 없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게 마련된 샤테드랄 성당과 프티 프랑스지역을 중심으로 한 상트르 드 빌 지역은 관광과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프랑스 도시계획의 철저함은 스트라스부르그에서도 느낄 수 있다. TGV가 오는 것을 대비한 스트라스부르그역 리모델링 계획을 철저한 주민앙케트를 거쳐 하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앙케트 질문 수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교했다. 도시계획 입안자들이 주민들의 눈에 맞춘 앙케트지 마련과 이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철저히 수렴하는 모습은 국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행정체계였다.
또한 라인강을 경계로 독일 겔(Kehl) 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이유로 스트라스부르그도 파리와 마찬가지로 서부 중심의 개발이 이뤄졌다. 1970년 이후부터 항구시설과 항만산업이 중심을 이룬 동부지역 개발을 서서히 준비해 최근 독일 겔 시와 통합적인 도시개발을 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그 도시개발프로젝트 통합 디렉터(Direction du Developpement Urbain Service Conduite des Projets Urbains Ingenieur principal)인 장이베 뮈니에씨는 “도시계획 단계에서 도시에 대한 통합적인 상을 제시하고 이것을 관리하는 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도시계획에서 민자를 유치한 개발이라도 통합적 디자이너를 둬 계획의 정확성을 꾀하는 모습을 보며 구 도심의 슬럼화조차 예측하지 않는 우리네 실상이 안타까웠다.
프랑스 취재협조/주한 프랑스 대사관·프랑스 외무부 커뮤니케이션 정보국, 자료번역/심현(창원대 불문과 강사)
사진/유은상 기자
※이 기획취재는 문화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전국 지역신문 종합평가 결과 경남도민일보가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됨에 따라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