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직행한다. 인큐베이터 속에 있는 아이들은 관리되고, 다음으로 부모의 손에 주어진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틀 속에 있는 국민들과 시민들은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인큐베이터를 벗어나면 어쩔 줄 몰라한다. 지방자치시대 10년이 넘었다고는 하나 ‘자캄는 지역 토호에 의한 정치와 유사한 개념으로 읽힌다.
거리조성이 구 도심 재생 도시계획과정임과 동시에 ‘주민자캄를 중심에 두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중심에 두고 거리와 마을을 가꿔나가는 모습은 일본의 ‘마을만들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메이지 시대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면서 상점들을 활성화시키고 전통적인 주민 커뮤니티를 복원한 사이타마 현 가와고에시 1번가의 모습은 우리 지역 기성상업지의 거리 조성과 비교되는 사례다.
|
 |
|
|
▲ 가와고에 1번가는 시 중심도로가 지나가 시민들의 편리를 위해 일방통행을 하지 않고 양방통행을 결정한다. |
|
일본 ‘마을 만들기’ 속에는 역사·주민 커뮤니티 ‘공존’
△일본의 마을 만들기 = 지난해 기존 사회교육센터를 그 역할을 대체하는 주민자치센터로 바꾸려는 창원시에 반발해 각종 시민단체들과 시가 팽팽히 맞섰다.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그 지역을 활성화시키려는 주민자치센터는 아직 동네 유지들의 잔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반면 시민운동단체가 중심이 돼 운영하던 기존 사회교육센터는 주민 스스로의 커뮤니티 형성에 큰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거리조성에 웬 주민자치냐’고 할지 모르지만 일본의 ‘마을만들기’(마치츠쿠리 まちづくり)는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 내 다양한 마을만들기 중 기존 중심 상업지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상인(주민)들의 자발적인 커뮤니티 복원과 마을 가꾸기에 대한 주체적인 활동, 이를 지원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 마을만들기를 이론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지역 전문가나 대학, 그리고 커뮤니티를 복원하고 공공적 성격을 띠도록 유도하는 시민단체의 중간다리 역할이 어우러져야 마을만들기는 성공을 예감할 수 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전문가 중심의 정확한 도시계획이 돋보이는 프랑스와 달리 일본은 거리조성에 마을만들기 개념을 도입하면서 도시에서 잃어버린 ‘주민커뮤니티’의 복원과 활성화에 핵심을 두었다.
|
 |
|
|
▲ 종루가 에도 시대의 잘 보존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
|
메이지 시대 건축양식 보존하면서도 상점 활성화
△역사와 주민커뮤니티가 빛을 발하는 가와고에 1번가 = 지난 11월 1일, 동경 신주쿠 역에서 30분 정도 전철을 타고 내린 가와고에 역. 역사를 지나 10분 정도 걷자 신마산 재개발 이전 일본목조건물이 거리 양쪽을 메우던 풍경이 그대로 연상된다. 평일 오후 2시 즈음이건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교사가 인솔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지구나 근대문화유산 지정과 비슷한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된 가와고에 ‘구라츠쿠리’ 마을이다.
마을서 살고 싶은 상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
사이타마현 남서부에 있는 가와고에(川越)시는 역사적으로는 ‘작은 에도’라 불릴 정도로 에도시대 요충지에다 활발한 상업활동으로 유명했지만 근대화 이후 도쿄 베드타운 역할을 하게 된다. 인구 약 32만5000명으로 지금은 과거의 명성과 자체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그 중 옛 가와고에 1번가인 ‘구라츠쿠리’마을이 대표적이다. 약 120여 년 전 메이지 유신 시기에 가와고에 중심 상업지였던 이곳에 큰불이 나 전체 가구수의 3분의 1이 소실되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전통적인 방화를 막는 건축양식인 ‘구라츠쿠리’양식으로 소실된 점포가 지어졌고, 현재는 관동지방 유일의 구라츠쿠리 상점가로 자리잡고 있다.
길게는 300여 년 전부터 가업을 잇고 있는 점포도 있어 일본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빵집, 우동가게 등 다양한 지상상권이 전통과 함께 잘 보존돼 있다.
지금은 연간 400만 명 가까이가 이 곳을 찾고 있지만 과거 이곳은 낡은 ‘구라츠쿠리’건물과 가와고에 신 상업지구 개발로 침체를 겪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가와고에 구라노가이라는 주민자치단체다.
커뮤니티 형성없이 거리 조성하는 우리와 대조
△전통을 보존하고, 주민이 살 수 있도록 마을을 만들자 = 1980년대 들어 기존 행정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사업이 일본 내 붐을 일으킬 때 이 지역 젊은 상인(주민)들을 중심으로 ‘우리도 마을 만들기’를 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구라노가이는 관과 민간이 결합된 ‘마치츠쿠리 위원회’와 달리 마을 사람들과 ‘구라츠쿠리’라는 건축양식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로 함께 구성된다. 이들은 이후 일본 내 다른 도시들을 돌며 공부도 하고 견학도 하게 된다. 그 속에서 ‘구라츠쿠리’라는 전통건축물의 소중함도 배웠단다.
이들은 슬로건으로 ‘구라츠쿠리를 보존하자’, ‘우리가 주체가 되자’, ‘상점가 활성화만이 아닌 우리가 주민으로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자’를 내세운다. 이후 이 조직이 틀을 잡은 마을만들기(단장)위원회가 구성돼 본격적
인 마을 만들기가 시작된다. 위원회는 상점가 주민 13명, 건축전문가를 포함한 지역 관계자 9명, 학술전문가 3명 등 25명으로 구성되고, 시의 도시계획 관계자, 상공회의소·상업진흥소 관계자가 옵서버로 꼭 참석하도록 되어 있다. 지난 18년 동안 월말이면 꼭 한 차례 씩 회의를 했다.
마을만들기에 전념하던 이들은 일본 통상성의 정책인 ‘커뮤니티 마트 구상보조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1987년 4월에는 ‘가와고에 1번가 마을만들기 규범에 관한 협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협정서 내용을 토대로 하고 커뮤니티 마트 구상보조사업 지원금 등을 통해 간판정비 등의 사업을 편다. 협정서에는 간판을 무채색으로 통일하고 크기를 줄이도록 하고, 건물 높이를 주위 건물에 맞추고, 모든 건물에 지붕을 얹도록 하며, 입구를 정면으로 정비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사이타마 현의 상업지구 고도화 자금으로 외벽을 단장하고, 관광시가지 형성사업자금 등으로 전선 지중화를 한다.
|
 |
|
|
▲ 가니 가즈오 구라츠쿠리 위원회 주민위원장 “관망하는 주민들 설득하고 스스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
|
위원회의 주민위원장을 맡고 있는 가니 가즈오씨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18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머리가 없어진 것 같다”고 요약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마을정비를 해나가던 주민들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친다. 이 지구가 상업지구로 건축 허가요건이 건폐율 80%, 용적률 400%에 달하기 때문에 이 곳 중 3곳에 대형 건축물이 들어서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일이 모두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인 주민들과 위원회는 그 해답을 찾다가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라는 것을 발견한다.
위원회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받아내고, 이를 토대로 문화재청에 지정요구를 하게 된다. 주민들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돼 1999년 12월 대형건축물을 마을에서 몰아 낸다.
요즘은 전선 지중화 전에 비해 약 3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가고, 우동가게나 빵가게를 중심으로 매출도 향상되었단다. 종루 등 전통 건물이 잘 보존돼 있어 TV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마을 만들기 위원회는 회의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올 연말에는 요코하마와 도쿄에서만 하는 조선통신사 행렬행사를 민단과 조총련과 상의해 추진할 계획을 세웠다.
가니 가주오씨는 “마을 만들기를 하면서 느낀 건 전체 주민의 3분의 1은 항상 찬성쪽이고, 3분의 1은 반대며, 또 다른 3분의 1은 관망을 한다. 하지만 정말 마을을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이들이 있으면 힘들더라도 관망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행정이 지원하도록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고 말한다.
이국의 땅, 이 곳에선 마을에서 살고 싶은 상인들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주인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일본현지취재협조/곽동윤(지바대학교 도시환경시스템과 교수), 일본자료번역/정영배(진주국제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사진/유은상 기자
※이 기획취재는 문화관광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전국 지역신문 종합평가 결과 경남도민일보가 우선지원대상 신문사로 선정됨에 따라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